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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계약과 경쟁
-부정당제재에서 자율시정으로-
우리나라에서 현대적 의미의 정부조달 제도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 9.
24. 법률 제217호 재정법 제6장 제57조의 “각 중앙관서의 장은 매매, 대차, 청부 기타의 계약을 할 경우에 있어서는 모두 공고를 하여 경쟁에 부쳐야 한다. 단, 각 중앙관서의 장은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지명경쟁 또는 수의계약에 의할 수 있다.”에서 그 연원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규정은 1921년 4월 7일 제정된 조선총독부 법률 제42호 회계법 제31조와 동일하다. 당시에는 이러한 시스템을 관공수제도(官公需制度)로 불렀다. 1951. 12. 1. 대통령령 제570호 재정법 시행령 제77조부터 제112조는 관공수 관련 조항인데 필요적 계약서 작성으로부터 입찰 참가자격 제한까지 현행 정부조달 제도와 비교해도 큰 차이를 발견하기 어렵다.
재정법은 1961. 12. 19. 법률 제849호 예산회계법의 시행으로 폐지되었으나 재정법 제57조 계약조항은 예산회계법 제70조(계약의 방법과 준칙)로 이어졌고, 예산회계법 시행령도 재정법 시행령 내용을 대체로 수용하였다. WTO 정부조달협정이 발효되기 이전까지 예산회계법이 규정한 계약의 방법과 준칙은 대한민국 정부조달제도의 기본이었다.
그후 1997년 1월 WTO 정부조달협정이 발효됨에 따라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대한민국은 예산회계법 6편 계약 분야 내용에 정부조달협정과 국제거래규범을 반영하여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였고, 예산 및 재정운용 분야는 국가재정법을 제정하여 시행하였다. 이로써 한국 정부조달제도는 예산회계법 시대와 이별하고 명실상부한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시대를 맞이하였다.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이하에서는 ‘국가계약법’이라고 한다)이라는 정부조달제도를 규율하는 독립 단행 기본법제를 구축함으로써 여전히 회계법(1889년 明治 22년 제정)의 한 개 장(章)에서 정부조달제도를 운영하는 일본과 확연히 구별되는 정부조달법제를 보유하게 되었다.
한편, 한국 정부조달법의 명칭은 논자에 따라 일치하지 않는다. 개념의 주안을 어디에 두는가에 따라 실질적 행정기능의 수요품 취득에 적용됨을 강조하거나 계약의 주체가 정부 혹은 국가임을 강조하는 의미로 혹은 지방자치단체 등을 포함한 실질적 행정기능의 수요품 취득에 적용됨을 강조하거나 실질적 행정의 계약에 관한 법임을 강조하는 등의 이유로 정부계약법, 국가계약법, 공공계약법, 공공조달계약법, 행정조달법, 행정계약법 등의 여러 명칭이 존재한다. 명칭과 관련하여 1997년 발효된 이후 가장 최근의 국제규범이라고 볼 수 있는 국제무역기구 정부조달협정은 “정부조달”이라는 명칭을 제정 당시부터 명확히 사용하고 있고,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제4조 제1항에서도 “정부조달계약”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가계약법 제정취지가 정부조달협정의 발효와 연계되었으며 특정물품 등의 조달에 관한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시행령 특례규정 제2조 제2호에 “정부조달”을 정의하고 있기도 하다. 정부조달의 개념에 대한 법체계의 체계정합성, 조달분야의 국내 실무사례 및 국제적 공감과 법적 컨센서스를 반영하여 필자는 “정부조달”이라고 하고 이 분야 규범체계를 통칭하여 “정부조달법”이라고 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
연혁적으로도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은 원래 정부에서 국회로 상정한 법률안의 명칭은 정부조달협정을 시행하기 위한 국내법을 제정한다는 취지를 명백히 한 “정부조달계약 등에 관한 법률”이었고, 1994년 정기국회에서 조달계약이 아닌 국가가 계약당사자로 되어야 하는 계약 분야를 포함할 필요에 따라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이라는 명칭으로 통과시켰을 뿐이다. 필자가 정부조달에 대응하는 국내 여러 명칭 중에서 ‘정부조달’을 선호하는 것도 위와 같은 국가계약법의 제정 연원에도 부합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만, 현행 정부조달 시스템에는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의 적용을 받는 순수한 의미의 정부조달계약 외에도 지방자치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의 적용받는 지방자치단체조달계약이 있고,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의 적용대상인 공공기관조달계약을 개념적으로 구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조달계약과 공공기관조달계약은 끊임없이 독자성을 유지하려는 경향 또한 없지 않다. 그 외 정부의 다양한 행위형식 선택자유와 공공분야와 민간의 협력 그리고 민간의 공적분야 투자 등 전통적 조달의 범위와 내용을 상회하는 조달 행위 형식의 다양화를 포괄하고 이를 합리적인 법제도로 체계화하기 위하여는 정부조달계약이라는 명칭의 고수 보다는 기존에 언급된 명칭 중에서 정부 등 공공기관의 공적 임무 구현을 위한 조달 형식의 계약이라는 의미를 강조하고 있는 공공계약이라는 명칭을 추가적으로 사용하고자 한다. 이로써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의 적용을 받는 순수한 의미의 정부조달계약 외에도 지방자치단체를 포함한 다양한 지방 공공기관의 조달계약,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서 규율하는 공공기관의 조달계약은 말할 것도 없고 공공성을 보유한 기관이 조달절차에 따른 수요 충족을 공언하는 경우 등에도 특별한 거부감 없이 공공계약의 하나의 양상으로 이해하고 이에 관한 법률의 총체인 소위 공공계약법에 따른 규율을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에서도 “공공계약”이라고 쓰고 있음을 밝히고, 책의 본문에서 정부조달계약과 공공계약을 혼용하여 사용하고자 한다.
이 책에서 다루는 또 하나의 중요한 주제는 “경쟁”이다. 경쟁은 공공계약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이자 메커니즘이다. 경쟁은 시장경제를 촉진하고, 경쟁의 확대를 통하여 국가는 경쟁참여자가 제시하는 가장 저렴한 가격을 선택하여 재화와 서비스를 조달한다. 일반적으로 정부지출의 50%는 공공계약으로 사용된다. 그래서 국가기관의 경제성은 정부조달계약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국가의 국민경제 주체로서의 모습인 국고가 정부조달계약을 체결함에 있어서 가장 경제적으로 조달하여야 하여야 한다는 경제성원칙은 정부조달법 발전 역사에서 가장 우선적인 목표였으므로 경쟁원칙은 가장 중요한 조달법의 원칙으로 자리매김되어 왔다.
공공계약에서 경쟁은 다양한 방법으로 구현되도록 요구되고 있다. 조달참여자의 경쟁은 기본적인 것이고, 거기에는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 조달참여자와 국내 조달참여자의 경쟁도 고려하고 있다. 그러한 경쟁에서 결론이 이미 정해진 공정하지 못한 ‘형식만 경쟁구도’를 갖추는 것이 아니라 모든 참여자에게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여야 하고, 조달절차가 종료될 때까지 ‘실질적 경쟁’이 유지되도록 하여야 한다. 이러한 실질적 경쟁은 어느 한 개별 조달품목에서만 일회성 실질경쟁이 아니라 국민경제 속에서 경쟁이 지속 가능하도록 관리되어야 한다. 그래서 소위 중소기업간 경쟁제품을 정하여 대기업은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 자체가 경쟁 원칙에 위배되는 것으로 이해되지는 않도록 조달참여자와 참여예정자에게 경쟁개념에 대한 모순되지 않는 정보를 제공하고 이해를 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경쟁은 “공개”와 연결되어 참여함에 있어 어떠한 제한도 없어야 할 것이 요구된다. 그래서 공개경쟁입찰이 경쟁의 기본포맷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달기관은 특별한 사유 없이 경쟁이 제한될 수 있는 방법으로 조달절차를 진행하여서는 안 된다.
여기서 간과하여서는 안 되는 것이 적합조건과 낙찰조건의 구별이다. 공공조달은 조달계약 이행에 적합한 참여자로부터 조달되어야 한다. 이 적합조건은 최소한의 절차참여 조건으로서 기능하도록 하여 적합하지 않은 참여 업체가 아닌 한 모든 참여업체가 서열 없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그 기준으로서 업체의 객관적 평가, 매출액, 타 업체 혹은 기관의 추천, 종업원 수, 유사한 거래 실적 등은 업체 적합성의 요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계약이행이 가능한 역량과 전문성을 보유하고 법규 준수를 성실히 하여 신뢰할 만한 업체이기만 하면 차별 없이 조달절차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경쟁이 확대되고 확대된 경쟁은 공개, 투명, 공정, 차별금지, 동등대우라는 정부조달의 기본원칙이 올바로 작동하게 하고 그러한 토대 위에서 경제적 조달을 구현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낙찰조건은 계약 이행에 부합하는지 여부에 대한 엄격한 서열이 주어진다. 미리 공개된 낙찰조건에 가장 부합하는 참여자가 객관적 검증에 따라 낙찰자로 결정되는 것이다. 낙찰자는 반드시 미리 공지된 낙찰자 결정방법에 따라 선정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적합조건과 낙찰조건의 엄격한 구별과 각 조건의 적절성은 경쟁 원칙 구현에 대단히 중요한 요소가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적합조건과 낙찰조건이 혼동되어 적용되는 예를 자주 보게 된다. 그러한 예에서 참여자(비선자가 대부분이겠으나)는 큰 틀에서 공정하지 않았다는 소회를 밝히지만 대부분의 경우 경쟁 원칙이 제대로 구현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예나 지금이나 간과하면 안 되는 것은 경쟁을 통한 효율적인 조달을 위해 입찰참가자의 경쟁을 조직화하고 실질화 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즉, 입찰참가자의 경쟁을 보장하는 것은 정부조달법의 적용과 집행을 위한 핵심적 요체이므로 특정한 입찰참가자가 경쟁을 회피하거나 왜곡하는 행위로부터 공공발주기관을 보호하는 시스템은 필수 불가결하다. 정확히는 공공발주기관만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조달참여자 전체를 보호한다는 것이 옳은 표현이다. 또한 발주기관의 항상화된 독점적 지위에 대한 경쟁법적 가치와 관점은, 국가에게 이러한 특별한 지위를 악용하여 개별적인 입찰자들에게는 실질적으로 이익을 부여하고 다른 입찰자들에게 임의로 불이익을 주는 것을 방지하도록 하는 목적이 있다. 개별기업들은 국가의 정부조달수요로부터 자의적으로 배제되어서는 안 되며, 국가는 원칙적으로 모든 정부조달계약에 대해서 공개와 경쟁을 실현하여야 한다. 이 과정에서 헌법의 차별금지와 직업활동의 자유보장은 중요한 역할을 하며 국가는 시장경제질서를 보장하고 차별금지원칙을 준수하여야 한다.
한편 발주기관이 입찰참가자격제한권을 행사함으로써 민간 기업의 조달시장 참여자로서의 경쟁을 제한할 수 있게 된다는 위험을 인식하였고, 국가의 독점적 지위가 점차 자유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한 위험은 더욱 증가하고 있다. 따라서 입찰참가자격제한 사유가 있음에도 발주기관으로 하여금 입찰참가제한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입찰에 다시 참여할 수 있게 함으로써 경쟁을 축소하지 않도록 하여 시장의 범위를 확대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고, 기업으로 하여금 일정한 조치를 수행함으로써 입찰에
재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보장은 서구제국에서는 권리로까지 인정하고 있다. 이로써 국가의 효율적인 조달 이외에 시장참여자인 입찰참가자측에서도 경쟁 원칙은 적절히 작동하게 되었으며 법적 권리보호도 두터워지게 되었다.
여기서 경쟁체계의 구조적 문제와 관련하여 독일 Saarland 대학의 마크 붕엔버그(Marc Bungenberg) 교수는 자신의 교수자격심사논문(Habilitation)인 “Vergaberechtim Wettbewerb der Systeme”에서 시스템경쟁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면서 이는 경제적인 경쟁요소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경쟁요소를 포함하는 복합적인 상호작용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시스템경쟁의 보호, 즉 잠재적 계약자에게 경제적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계약체결의 경제적 효율성에 기여한다고 지적하고, 국가는 스스로 경쟁장애 및 경쟁제한 요소를 제거함으로써, 시장경제체제에서 자원의 효율적인 분배와 시장참여자의 광범위한 협력을 이끌어 낼 것으로 요청하고 있다. 공공부문의 시장경제화는 공법적 행위와 다양한 법원칙들을 통해 조달법의 형식으로 행하는 특별한 행정협력이므로 조달법 영역에서 경쟁기능의 강화를 위해 국가는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조치들을 해야 하고, 시스템경쟁의 관점에서 조달법의 기능을 확대하고 상충되는 이해관계를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결국 국가는 가급적 경쟁제한적 상황을 조성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민영화 경향의 증가, 사회복지서비스의 증가, 공공업무관리 영역에서 시장경제변수의 광범위한 영향으로 표현되는 현대국가의 상황에서 특히 공공계약 부문에서 잠재적 계약자에게 좀 더 향상된 경제적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단순한 근대국가적 경제적 자유만이 아니라 필요한 경우에는 과감한 경쟁의 조성으로 참여를 보장하는 조치를 하여야 한다. 그러한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의 공공계약 절차의 참여 배제를 당연시하는 규정들은 과할 정도로 많다. 광범위한 영업정지, 업무정지 등의 행정청의 처분에 따른 참여배제를 제외하고도 개별 공공계약법률에 다양한 사유에 따른 계약절차 참여제한 규정을 두고 있다. 국가계약법 제27조에 규정된 입찰참가자격제한, 지방자치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제31조에 규정된 입찰참가자격제한,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제39조에 규정된 입찰참가자격제한, 국가연구개발혁신법 제32조의 국가연구개발활동참여제한, 조달사업법 제22조의 거래정지, 조달사업법 제29조의 비축물자 이용업체 등록제한, 중소기업제품 구매촉진 및 판로지원에 관한 법률 제8조의2에 따른 중소기업자 간 경쟁입찰 참여제한, 판로지원법 제23조의 중소기업자의 공공기관 계약체결제한,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민간투자법 제46조의2에 규정된 민간투자사업 참가자격 제한 등은 중요한 제한 근거 법률이다.
그 다음 이 책에서 관심을 가진 부분은 공공계약 분야에서의 “패자부활(敗者復活)”의 기회 제공이다. 사람이나 기업은 실수할 수 있다. 또 실수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사회와 국가가 용납할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여야 한다. 어떤 경우에는 법위반에 대한 명백한 인식이 있었음에도 실수로 가장하거나 회사의 대표의 지시가 있었음에도 조직 구성원의 실수라는 식으로 꼬리자르기식의 대응이 더 큰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얄미운 대응이다. 하지만 이런 얄미운 대응에서도 실수와 잘못을 인정하고, 앞으로는 제대로 경쟁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공공계약에서 참여의 기회만은 배제하지는 않도록 하는 소위 “패자부활” 기회를 부여하는 시스템을 디자인해 보고자 한다. 그리고 그러한 기회를 부여하는 일정한 기관의 설치를 상정해 보았다. 그 기관은 단순한 입찰배제 사유를 야기한 기업에게 패자부활의 의미로서 입찰기회 부여 여부만을 심사하고 결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공공계약의 다양한 분쟁을 좀 더 전문적이고 권위 있게 해결하는 기관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보았다.
혹여나 공공계약에서 엄격한 참여배제를 적용하지 않고 패자부활적 기회를 부여하는 것에 대하여 거부감을 드러내는 분들이 많을 수 있다. 국가적 위난이나 국민적 수치를 야기한 기업이 법의 심판에 직면하여 기자회견을 자처하며 잘못을 인정하고 대규모 공적 사회 기여 프로그램을 발표하는 등으로 국민적 관심과 호응을 얻어내고도 시간이라는 터널이 지난 후에는 공적으로 발표한 다짐과 약속마저 준수하지 않은 몇몇 사례를 목도한 불편한 기억들의 영향이다. 그래서 우리 국민들은 이러한 기업의 패자부활식 프로그램 제공에 대하여 감정적으로 거부감을 드러낼 수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 비난하고 잘못한 과거만을 드러내어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게 할 것인가에 대하여 고민하자. 무엇보다 이제 한국의 기업은 국내에서만 비즈니스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 정부가 어느 한 기업을 입찰참가 배제 사유를 범한 기업으로 낙인을 찍고 실제로 입찰에 참여할 기회마저 부여하지 않는다면 그 기업은 외국 어디에서도 제대로 된 기업 활동을 할 수 없게 된다. 공공계약 시장에서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입찰참가자격 배제 사유를 범한 것이 아니라면 배제 결정 과정에서 국내적 상황뿐만 아니라 그 기업의 해외 활동에 대하여도 함께 고려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한 모든 것을 고려하고 판단할 수 있는 역량을 보유한 기관을 설치하여 공공계약의 법적 보호에 만전을 기하고 새로운 기회까지 부여할 수 있도록 해 보자는 것이다. 필자의 이러한 생각은 미국의 행정분야에서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는 administrative agreements에서 큰 영향을 받았고, 이러한 이념을 대륙법적 혹은 영미법적 전통의 어느 하나에 갇히지 않으면서 공공계약의 경쟁확대를 위하여 권위있게 시행하고 있는 EU 그리고 독일의 공공계약법상 자율시정(self-cleaning)제도는 국내에 도입할 만한 제도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한 고민을 정리하여 2022년 광운대학교 대학원 건설법무학과 박사학위 논문으로 ‘정부조달 입찰참가자격제한의 대안으로서 자율시정제도의 도입’을 작성하였고, 논문을 좀 더 발전시키고 사례와 최근 판례를 더 보완하여 책으로 출판하기로 하였다.
내가 모르고 있다는 것조차도 모르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고, 모르고 있다는 것 그 만큼은 알고, 깨우치기 위한 지적 호기심에 목말라하던 지난 오랜 시간 스스로 저미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실무가로서는 꽤 작성하고 발표하기도 한 여러 편의 논문과 2019년 10월 법률신문사에서 출판한 “정부조달법 이해 ?독일 · 한국 이론과 실무”가 고맙게도 2020년 1월 2쇄 출판으로 이어지고 4년 후 박영사에서 “공공계약과 경쟁”이라는 정부조달법 관련 서적을 연이어 출판할 수 있게 되어 무척 벅찬 마음이기도 하다.
회수로 28년간 군법무관으로서 국가와 군에 복무할 수 있었던 것은 무한한 자랑거리이고 이제는 큰 자산이 되었다. 특히 대한민국 군령 최고기관인 합동참모본부 법무실장으로서 국가이익의 각축장으로서 대한민국과 주변국을 조망해 본 경험은 평생 잊을 수 없다. 또, 무기체계 소요결정과 시험평가업무 등 소요기획의 제요소를 실질적으로 경험하면서 조직하여 운영한 ‘전력소요 및 시험평가연구회’의 초대회장이었던 것은 여전한 자랑이기도 하다. 수사업무, 재판업무, 징계업무, 유권해석업무, 행정업무, 작전법업무는 말할 것도 없고 각종 조달업무까지 다양한 경험을 통함으로써 종합적 문제해결에 사뭇 비교우위가 있다는 자부심을 가져본다. 이런 자부심으로 이끌어주신 독일 Hamburg 대학의 지도교수이신 Prof. Dr. Stefan Oeter 교수님께는 영원히 갚지 못할 학은을 입었고, 작년에 돌아가신 Hamburg 대학의 Ulrich Karpen 교수님께도 특별한 감사와 존경을 드린다. 방위사업청에서 정부조달 실무와 이론의 간극을 체험하면서 이론적 부족함을 느끼고 있을 때 만난 대한상사중재원의 중재아카데미 과정과 광운대 건설법무대학원은 건설조달과 건설분쟁에 대한 깊은 성찰을 가지게 하였다. 건설법무학 박사과정에서 연구하면서 박상열, 유선봉, 이춘원, 정영철 교수님의 따뜻한 지도를 받았고, 신만중 지도교수님의 큰 격려와 사랑에 힘입어 건설법무학 박사학위도 취득하였다. 큰 은혜 두고두고 감사하며 보답하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그리고 보잘것 없는 내용을 좋은 책으로 만들어준 박영사의 조성호 이사님과 장유나 차장님께 특별히 감사하고 싶다.
2020년 3월 변호사로 개업하면서 더욱 바빠진 일정과 쌓인 연구과제에 헤어나지 못하는 남의 편임에도 묵묵히 응원하고 사랑으로 함께 해준 아내 양은희에게 온마음을 담아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그사이 어엿한 사회인이 된 아들 상연과 딸 혜원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섞어 전하며 앞날에 축복을 기원한다. 마지막으로 초등학교 2학년, 필자가 9살에 돌아가셔 추억이 많이 없는 것이 더 서글픈 아버지 故 김권규 님과 그 빈자리를 아랑곳 하지 않고 두 아들을 세상에 훌륭히 내어 놓으시고 몇 해 전 여름에 작고하신 착하고 아름다운 어머니 故 김봉심 님을 기리며 두 분께 이 책을 바친다.
2024년 10월
김진기
제1장 서론
제2장 입찰참가자격제한의 국내법적 규율과 문제점
제3장 경쟁 확대를 위한 자율시정제도
제4장 한국식 자율시정 제도의 도입 검토
제5장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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