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가와 학자로서 법조계의 큰 기둥이셨던 이시윤 선생님이 2024. 11. 9. 우리 곁을 떠나셨다. 대학시절 선생님의 강의를 들었고 주례를 서 주신 것을 계기로 나와 선생님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선생님은 1982년 민사소송법 초판을 출간하셨는데, 당시 사법연수생으로서 인근 아파트에 거주하던 나는 원고 작업을 돕게 되어 신민사소송법 17판까지 40여 년간 개정작업에 참여하였다. 나의 석박사 과정의 이수와 학위논문도 모두 선생님의 권유와 지도로 된 것이었다.
선생님은 고등고시 사법과 10회에 합격하신 후 서울대 법대와 사법대학원에서 강의를 하시고 독일 Erlangen-Nurnberg 대학교에서 2년간 수학하신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민사소송법의 이론과 선진 외국 법제에도 밝으셨다. 오랜 법관생활 동안 민사재판 실무도 직접 담당하셨다. 그 결과 선생님은 평소 ‘연구하는 법관’, ‘실무를 아는 학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셨다. 그 소신에 따라 민사실무연구회의 창설멤버가 되어 민사절차법의 이론을 재판에 접목시키는데 노력하셨고, 이후 실무가와 학자가 함께 하는 학회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1992년에는 한국민사소송법학회, 2003년에는 한국민사집행법학회의 창립을 주도하여 각 초창기 회장으로서 학회의 기초를 닦으셨다. 나는 두 학회 모두 창립멤버로 참여하여 실무가측 연락을 담당하였다.
선생님은 초대 헌법재판관, 감사원장을 역임하시면서 헌법소원제도, 헌법재판에서의 가처분 등 우리 헌법재판의 기초를 닦는데 크게 공헌하시고, 공직사회의 합법성 감사 등에도 역량을 발휘하셨지만, 그때에도 늘 국내외 민사소송법 책을 옆에 두시고 연구를 게을리하신 적이 없다.
작년 초에 이제는 선생님의 책을 공저로 하여 전정판으로 준비하자고 하셔서 내용의 수정?보충에 열중하였는데 그 출간을 보시지 못하고 소천하신 것이 한없이 아쉽고 비통한 마음이다. 선생님이 이 책을 출간하시면서 쏟으셨던 정성과 이론적 깊이는 따라갈 수 없으나 최대한 유지되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하였다. 곧이어 이론과 실무에 모두 밝은 후배가 이어받기를 기대하고 있다.
전정판을 집필하면서 중점을 둔 부분을 몇 가지 밝히고자 한다.
첫째, 이 책은 민사소송의 체계서로서 순수한 실무서도 아니고, 모든 학설과 이론을 망라한 주석서도 아니다. 민사소송법을 수강하는 법학도나 민사재판의 실무를 담당하는 실무가, 그리고 관련 학자들에게 민사소송의 핵심 이론과 판례, 실무를 정리하여 소개하는 체계서로서 기능할 것에 촛점을 둔 책이다. 그러므로 이 책이 체계서로서는 물론 학문적으로나 실무적으로나 두꺼운 주석서나 실무서적을 보지 않고도 관련 민사소송의 이론, 판례와 실무가 어떤지를 알 수 있도록 정리하는데 노력하였다.
둘째, 이 책의 초판이 출간된 지 40년이 넘었고, 그동안 종이 원고에 수정, 보완하는 방법으로 개정판을 집필한 관계로 문투가 오래되거나 젊은층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들도 있었다. 표현이 어렵다거나 글자크기가 작다거나 각 페이지의 layout이 너무 빡빡하여 빨리 읽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에 원고를 한글파일화하여 작업하면서 내용이 같더라도 가급적 간단하고 명료하게 서술을 바꾸어 기존 원고 분량의 10% 정도를 줄일 수 있었다. 다만 내용을 수정?보완하는 작업으로 인하여 5% 정도의 원고 분량이 추가되어 결과적으로 원고의 분량이 5% 줄었으나, 글자크기를 키우고 layout을 다시 하여 총면수는 거의 같게 되었다. 또한 판례색인을 만들어 독자들의 편의를 도모하였다.
셋째, 이 책은 법학도 또는 실무가가 찾는 책이므로 판례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다. 따라서 이 책의 본문에 서술한 일반이론 또는 통설과 판례가 같은 경우에도 주석에 판례번호를 명시하였고, 특히 학설이 갈리는 경우에는 판례가 어떤 이론을 취하였는지를 명확히 하였으며, 중요판례의 경우에는 본문이나 주석에서 그 요지를 소개하고 간단한 평석의견을 기재하였다.
넷째, 민사소송학자들의 훌륭한 체계서가 많이 출간되었고, 관련 학회지의 발간도 연차가 늘었으므로 이를 최신판까지 보충하여 소개하는데 노력하였다. 기존에 있던 독일, 일본, 미국의 학설이나 판례도 최신판으로 업데이트하였다. 나아가 내용상 보충이 필요하거나 판례와 실무에 대한 좀더 상세한 소개와 평석이 필요한 부분과 2025. 7. 15.자 판례공보에 실린 판례까지 보완하느라 제17판의 약 20% 부분을 수정 또는 보완하게 되었다.
공저자의 법조인으로서의 생활도 45년이 되어 간다. 법관으로서 재판을 주재할 당시는 물론 변호사로서 활동하면서 느낀 것이지만, 특히 전정판을 집필하기 위해 관련 서적이나 판례를 분석하면서 확인한 점은 우리 민사소송의 이론과 판례가 너무 복잡하고 일반인은 물론 관련 종사자들도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모든 국민이 이용할 수 있는 민사소송의 체계와 이론을 이렇게 개별적으로 세분해 놓고 개별사정별로 요건, 절차와 효과가 다른 결과, 판례가 어떤지를 검색해야 하고 판례를 찾더라도 이를 이해하는데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바람직한 모습인지 의문이다. 로스쿨생들이 가장 어려운 과목이 민사소송법이라고 토로하는 것이 그들만의 잘못인가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저자도 동료학자의 이론과 판례를 소개하고 비평하느라 이 책을 더 쉽고 간명하게 집필하지 못한 책임이 있음을 통감하고, 이후 개정판에서는 더욱 읽기 쉽고 편한 책으로 만들 각오이다.
전정판을 집필하는데 건국대학교 로스쿨의 이동률 교수, 성균관대학교 로스쿨의 전휴재교수, 서울고등법원 이원석 고법판사의 심도 있는 조언과 도움이 있었다. 독일 법령, 문헌과 판례의 정리는 (주)어니스트AI에서 AI전문가(프로덕트 오너)로 활약중인 류승호변호사의 도움이 컸고, 국내 판례와 참고문헌의 면수 정리는 법무법인(유한) 대륙아주 이지은 선임의 역할이 많았다. 자신의 업무가 아님에도 기쁘게 도와준 것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공저자들과의 40년 넘는 인연을 되새기며 흔쾌히 출판을 허락하신 안종만 회장님, 안상준 대표님과 조성호 이사님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정년을 마다하고 이 책을 직접 다듬어 주신 김선민 이사님에게 높은 경의를 표한다. 신혼 초부터 지금까지 이 책의 원고집필과 판례정리 등을 돕고, 이제는 공저자로 집필하느라 밤늦게까지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만큼 정다운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한 아내와 두 아들에게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2025. 7.
공저자 조관행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