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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제9판] 형법총론
김성돈 l 박영사
51,300원  정가 54,000  (-2,700원 할인)
920 쪽 ㅣ 2024년 11월 19일
1706451
513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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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소개 ■

부부동반으로 단체 관광을 하던 목사일행이 버스전복 사고로 전원이 사망하는 참사를 당했다. 망자들을 심판하던 베드로가 잠시 자리를 비우면서 대기열 맨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던 박 아무개 목사에게 심판업무를 대행시켰다. 문제를 내어 맞추면 천당행, 못맞추면 지옥행을 결정하게 하는 업무였다. 박 목사는 ‘수요예배는 무슨 요일에 보느냐’를 물어 동료목사를 모두 천당으로 인도하였다. 자신의 아내가 심판대 앞에 서자 박 목사는 돌연 문제를 바꾸어 ‘차이코프스키’ 스펠링을 물었다. 정답을 맞추지 못한 박 목사의 아내 앞에서 지옥행 문이 열렸다.  

나는 제목과 작가의 이름도 생각나지 않는 어느 단편소설에서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읽었다. 학기 초 첫 강의시간에 로스쿨 학생들에게 이 이야기를 꺼내고선 형법공부 방향성 차원의 교훈조로 다음과 같이 요약되는 ‘썰’을 몇 차례 푼 적이 있다. ‘법학적 지식은 차이코프스키 스펠링과 같이 단순한 암기적 차원의 지식이 아니다. 그런 단순 지식을 테스트하는 시험제도가 결국 법학교육을 망치는 주범이 되고 있다. 현재 로스쿨을 둘러싼 모든 병폐는 변호사시험제도의 저주다.’ 

천국의 열쇠를 이해하지 못하는 세속적 목사가 천당과 지옥의 문을 결정하기 위해 묻는 수준의 문제들은 지금도 법무부 문제은행에 차곡차곡 적재되고 있다. 그 중에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판례와 사례의 일대일 대응관계에 대한 기억력을 테스트하는 문항들이다. 이러한 문항들이 만들어내는 저주는 예비법조인을 정답에 대한 소갈증을 앓는 환자처럼 만들고 있다. 예비법조인들로 하여금 ‘맥로(McLaw)식 인스턴트 법학교육’(차칙)을 선호하는 소비성향을 가지게 만듦으로써 스스로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할 생각의 근력은 나날이 감퇴되고 있다. 모든 로스쿨은 ‘교육을 통한 법조인 양성’이라는 설립목표를 일찌감치 폐기처분하여 합격률을 높이는 경쟁체제에 돌입했고, 구체적 사례에 적용될 정당한 ‘법(iuris)’을 현명하고 신중하게(prudent) 생각하여 발견(획득)하도록 하는 법학(Jurisprudnence) 교육의 이상도 실종된 지 오래다. 

형법의 문을 여는 열쇠를 가질 수 있게 하기 위해 예비법조인에게 ‘형법’을 어떻게 교육해야 할지를 고민해보지 않은 법학교수들은 드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 고민과는 정반대의 처방들로 나타나기도 했다. 로스쿨 시대 이후 많은 형법 교과서들이 요약과 축약, 덜어내기, 그리고 총론과 각론의 단권화 등 슬림화를 미덕으로 삼는 방향으로 바뀌어간 것이 그 하나의 예다. 그 결과 저자는 늘었지만 독자는 자꾸만 줄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슬림화 경향이 결국은 정작 비판하던 그 대상에 대한 굴복이자 순응이다. 슬림화가 혹여라도 로스쿨생들의 과중한 학업부담을 덜어주려는 자비심에서 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백퍼센트 실천학문인 법학이 당사자의 인생이 걸린 문제들을 다루는 학문임을 모르지 않는다면 예비법조인들의 학업부담은 당사자들의 삶의 무게에 견줄 바가 못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장차 오십여 년 이상 법조실무에서 사용할 문제해결능력을 갖추기 위한 3년의 준비과정이 고작 3~4백 페이지 정도에 요약된 수험서 암기에 맞춰져 있다는 사실을 알면, 풍랑 앞의 돛단배와 같은 운명에 처해 있는 의뢰인들의 심정은 어떠하겠는가.

‘포르노’ 영화에는 썸타기, 밀당, 헤어짐과 재회 등과 같이 관계의 성숙을 위해 거치지 않으면 안 될 중간 과정이 없다. 지루한 사랑의 과정 없이 뜬금없이 사랑의 몸짓만 강렬하게 등장한다. 나는 전면개정한 형법총론 교과서가 포르노와 같이 되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이 때문에 목차 다음에 곧바로 암기용 표준지식을 등장시키는 수험서 서술 방식을 지양했다. 중요한 법리가 탄생한 배경과 사고의 과정 그리고 다양한 변형법리들을 배치하다 보니 전판에 비해 분량이 오히려 늘었다. 영리한 슬림화를 거부하고 우둔한 비대화의 길을 택한 데에는 바뀐 출판사의 규모가 군소 출판사와는 다르니 판매량에 대한 부담이 줄어든 점도 한몫하였다. 분량이 늘어도 된다고 생각하니 욕심도 커졌다. 내친 김에 ‘무엇을’ 교육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을 곳곳에 추가하기도 하였다. 과거의 사례에서 이미 발견된 ‘법(리)’들도 풀어서 설명함으로써 이해도를 높일 수 있도록 하였다. 동시에 장래의 새로운 사례에 대해 적용할 수 있는 ‘법 발견 방법’에 관한 현대 법이론의 입장을 필자 나름대로 소화하여 그 방법을 범죄성립요건의 하위(개념)요소들에 대한 해석에서도 응용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특히 이들 하위요소들에 대해서는 ‘자연주의적 존재론적 접근방식’보다는 ‘규범적 평가적 접근방식’에 따를 경우 구체적 사례에 타당한 가소성있는 ‘법(법리)’의 발견에 한걸음 더 가까이 갈 수 있음도 틈틈이 부각시켰다. 19세기 말 독일 형법이론학의 잔재를 부분적으로라도 걷어냄으로써 한국형법학을 적어도 70년대부터 전개된 독일 형법이론학의 방법론의 수준에 다가가게 만들고 싶었다.

이 책의 주된 독자로 로스쿨 형법총론 강의 수강생만 염두에 두지 않았다. 실무에 몸담고 있는 법조인들에게도 일독을 권한다. 한편 마음이 급하고 갈 길이 먼 로스쿨생들을 위해 형법이론의 역사적 발전과정 및 당장 실무에서 쓰이지 않거나 문제해결과 직접적 관련성이 적어 건너뛸 수 있는 단락들은 ☆표로 표시해 두었다.

법학의 대상인 법률은 ‘열린 텍스트’이다. 형법 총칙규정은―헌법의 기본권 조항과 함께―다른 법률보다 더 많이 열려 있고, 더 많은 흠결규정을 가지고 있다. 열린 텍스트는 다양한 해석가능성을 포함한다. 하나의 절대적 해석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다양한 해석 가능성 중에 근거 없는 해석은 수용되기 어렵다. 어떠한 주장이나 의견도 절대적 우월성을 가질 수 없다. 사실이 증거에 기반해야 하듯이 법률의 해석은 해석방법과 해석의 근거에 기반해야 한다. 증거 없는 사실에 기초하여 유죄를 인정할 수 없듯이 근거 없는 주장이나 신념에 기초한 독단적 의견을 가지고는 사실에 적용할 ‘법(법리)’이 될 수 없다. 이 세상 모든 일들이 그렇듯이 법도 그렇다. 유일하게 옳고 바른 하나의 해석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형법의 세계를 ‘함께’ 방황하기 바란다. 만약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성취가 있다면 그것은 독자의 업적이고, 실패는 전적으로 저자의 몫이다.   

                               

2024년 여름 끝자락에서 가을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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